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이 친구가 생긴다면? <아몬드>

 

손원평 작가의 장편소설 <아몬드> 리뷰입니다. 무표정한 소년의 얼굴이 새겨진 표지는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그림 속 표정처럼 주인공은 감정 표현에 굉장히 서툰 열여섯 살의 소년입니다. 기쁨도 분노도 슬픔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이 바라보는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주인공 윤재의 어머니는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홀로 윤재를 키워보고자 했지만 아들이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윤재의 외할머니, 즉 자신의 엄마를 찾아갑니다. 윤재는 감정표현불능증을 앓고 있습니다. 뇌에는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있는데 이것의 크기가 정상보다 작아서 생겨난 병입니다. 따라서 윤재는 웃는 일도, 우는 일도 없습니다.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헌책방을 운영하며 근근이 살아가지만 윤재를 위한 교육을 빼놓지 않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등을 연습하는 사회화 교육입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 윤재는 엄마, 외할머니와 함께 외식을 나갔다가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이 일로 윤재는 눈앞에서 외할머니를 잃게 됩니다. 엄마는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윤재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크게 동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홀로 책방을 운영하며 학교를 다닙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윤재에게 윤 교수라고 불리는 한 중년 남성이 찾아옵니다. 그는 아주 이상한 부탁을 합니다. 바로 자신의 아들 행세를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윤 교수 부부는 과거 어린 아들을 잃어버린 아픔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병에 걸려 위독한 상태가 되었고 윤 교수는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최대한 아들과 비슷하게 생긴 또래 소년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것이 윤재였습니다. 윤재는 그의 부탁대로 가짜 아들 행세를 하고 윤 교수와 인연을 맺게 됩니다. 하지만 얼마 후 윤 교수의 실제 아들, 곤이가 나타납니다. 곤이는 충동적인 성향의 아이였습니다. 그는 윤재가 자신 행세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윤재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기에 곤이는 더욱 약이 오릅니다. 그러나 윤재는 오히려 곤이에게 호기심이 생깁니다. 자신이 그토록 연습했던 감정표현이 곤이에겐 너무나 쉬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소년이 서로를 의식하기 시작하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

소설 속 두 주인공 윤재와 곤이는 정반대의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곤이는 쉽게 화를 내고, 때로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폭발합니다. 그러나 윤재는 감정 자체를 모르는 아이입니다. 반면 윤재는 사랑을 받는 일에는 익숙합니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그를 지극정성으로 돌본 덕분입니다. 하지만 곤이는 어릴 적 부모와 떨어져 홀로 자라며 사랑을 받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다른 두 아이는 서로에게 끌려 친구가 됩니다. 그리고 천천히 상대를 이해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우정을 넘어, 열여섯 살 소년이 세상을 이해하는 첫 발걸음이기도 합니다. 소설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큰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내용에 진행됨에 따라 두 소년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래서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관찰하는 것은 이 소설의 또 다른 묘미입니다. 소설은 말합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라고.

 

아몬드의 의미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아몬드가 담고 있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윤재의 병을 유발한 뇌의 편도체가 아몬드처럼 생겼다는 것이 첫 번째 의미입니다. 또한, 소설 초반 윤재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아몬드 간식을 자주 건네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아몬드가 두뇌 건강에 좋은 견과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몬드는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애정과 보살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은 큰 위기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데, 감정 표현 없이는 사회화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소설 후반에 다다라 윤재가 조금씩 감정을 표현하기까지 여러 에피소드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으로 어린 윤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으로 보살핀 어머니의 헌신이 그의 존재를 성장시킨 가장 결정적인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아몬드는 청소년의 우정을 다룬 소설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서로 다른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용, 스스로의 단단한 틀을 깨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성장기가 모두 담겨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성인들에게도 큰 위로와 울림을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