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제레나폴리스> 인간 욕망에 대한 이야기

201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조선수 작가의 소설집 <제레나폴리스>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을 법한 인물들, 그들의 쓸쓸하고도 비정상적인 삶을 담담하게 담아낸 소설책입니다. 가공된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마치 지구 어딘가에서는 분명 벌어지고 있을 것 같은 낯선 장면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에 벌어진 갑작스러운 사건 

이 책에는 한국일보 등단작이기도 한 <제레나폴리스>를 포함해 총 7편의 단편소설이 담겨있습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들 앞에 미처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사건이 벌어지고 그로 인해 한 인물이 어떻게 행동하고, 변화할 수 있는가를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습니다. 그중 표제작 이기도 한 <제레나폴리스>에서는 주상복합아파트의 가사도우미 '메이'가 주인공입니다. 이제 갓 30대 초반이 된 메이는 자신의 생일을 맞아 친한 친구 두 명을 자신이 일하는 아파트 3707호로 초청합니다. 물론 집주인이 여행을 떠난 사이 몰래 벌어지는 일입니다.  친구 한 명은 7년째 백수이며, 또 다른 친구는 백화점 지하 1층에서 케이크를 파는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이들은 처음 들어와 보는 고급 아파트의 풍경에 매료되어 마치 자신의 집인 것처럼 주방을 사용하고 술과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을 초청한 메이는 어딘가 불편한 기색입니다. 사실 최근 메이에게는 삶을 흔드는 큰 사건이 두 가지가 벌어진 상태입니다. 하나는 자신의 어머니가 양주와 약을 함께 먹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이고, 또 하나는 3707호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사라진 것입니다. 친구들이 떠난 후, 메이는 조용히 집을 치우며 최근 벌어진 두 가지 사건이 전부 자신의 부주의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해 자책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를 견디고 묵묵히 삶을 살아가고자 다짐합니다. 

 

빈부격차를 다룬 영화 기생충과의 비교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 기생충이 떠올랐습니다. 영화에서 고급주택에 사는 박 사장의 가족이 캠핑을 떠나던 날, 이 집의 운전기사인 기택네 가족은 빈 집이 마치 자신들의 집인 것처럼 그곳에서 파티를 벌입니다. 그들은 정원, 거실, 주방, 욕실 등등 이들은 집 곳곳을 활보하며 상류층의 삶을 만끽합니다. 밤이 되자 집에 있던 고급 양주까지 꺼내 술판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불청객의 등장으로 이야기가 급변하는 영화 기생충과는 달리, 제레나폴리스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메이는 친구들이 남기고 간 흔적까지 발견해 정리하며 완벽한 증거인멸에 성공합니다. 저는 오히려 이것이 더욱 현실적이라 서늘하게 느껴졌습니다. 메이는 비정규직 신분으로서 겪는 열등감, 빈부격차에 따른 고통과 불행을 겉으로 크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자신의 삶에 어느 정도 순응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조용히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모습 같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 맹수는 앞으로도 공격 한번 제대로 해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소설은 부의 권력에서 밀려나 소외된 자들을 마냥 처량하고 나약하게만 표현하지 않습니다. 억눌린 그들의 내면을 간결하지만 은밀하게 나타냅니다. 

 

무기력한 주인공들 

<제레나폴리스> 외 에도 이 소설집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미국 교도소에 수감된 한국인, 출판사 계약직 직원, 어린아이와 반려동물이 한꺼번에 휘말린 사고를 맞닥뜨린 한 남자, 사람들에게 치여 항상 지쳐있는 여행가이드 등이 그렇습니다. 이들은 전반적으로 무기력합니다. 다른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활기차고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부분이 정말 우리의 일상과 닮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각자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말하지만, 영화나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열심히 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날은 때론 체념한 듯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조선수 작가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삶의 작은 사건을 통해 예기치 않게 나의 진짜 모습을 맞닥뜨립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일상의 익숙함과 평범함을 날려버리고 통쾌함을 느낍니다. 현실과 공상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조선수 작가의 책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