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 <한 스푼의 시간>

가난한 마을에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인공로봇. 사람들은 큰 호기심을 갖지만 각자의 삶에 지쳐 곧 흥미를 잃고 맙니다. 로봇은 그곳에 사는 인간의 삶을 지켜보며 점점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인간은 왜 이렇게 모순적인지, 로봇의 의문을 풀어낸 구병모의 소설 <한 스푼의 시간> 소개입니다.

허름한 세탁소에 도착한 의문의 택배 

명정은 허름한 동네 세탁소를 운영하는 주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사람 크기만 한 상자의 커다란 택배가 배송됩니다. 그는 택배에 적힌 이름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바로 얼마 전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들의 이름이 적혀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심스레 상자를 뜯어보니 그 안에는 사람과 똑같이 생긴 로봇이 누워있었습니다. 동봉된 책자에는 '로봇'이라고 적혀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사용설명서였습니다. 알고 보니 이 로봇은 아들이 다니던 외국계 바이오 기계회사에서 샘플로 제작한 가정용 로봇이었습니다. 졸지에 로봇을 떠안게 된 명정은 차근차근 그의 작동방식을 공부해 나갑니다. 그리고 그에게 은결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본격적으로 세탁소 아르바이트 생으로 활용합니다. 은결이 오고 나서 세탁소에는 어린 손님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은결을 구경하기 위해 심부름을 자처한 아이들이었습니다. 그중에는 시호도 있습니다. 시호는 적극적으로 은결의 피부를 만져보고, 갖가지 질문을 쏟아내는 등 그에게 큰 호기심을 보입니다. 은결은 그런 시호의 질문에 대답해 주기 위해 열심히 작동합니다. 그렇게 1년, 2년이 흐르고 은결을 향한 동네 주민들의 관심은 시들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은결은 세탁소 문을 열다가 낯선 여성이 지나가는 장면을 포착합니다. 잠시 후, 은결은 그녀가 시호라는 결론을 도출해 냅니다. 그 사이 시호는 키가 자랐고 교복을 입은 학생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은결은 자신이 기존에 인식했던 시호라는 인물에 혼란을 느끼며 당황합니다. 시호는 아버지의 병문안을 가는 길이었고, 이를 본 명정은 은결에게 시호의 짐을 대신 들어주라고 부탁합니다. 그렇게 은결과 시호는 함께 길을 떠나고, 둘은 하루종일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은결이 주인 명정에게 아무런 연락도 없이 하루를 보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돌아온 날 밤, 은결은 자신이 주인 옆을 비운 것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명정에게 원하지 않으면 다시는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명정은 복잡한 표정으로 너는 네가 원하면 아무 때고 언제든지 떠나도 된다. 다만 전원이 나가기 전까지만 돌아오라고 이야기합니다. 과연 은결은 명정의 곁에 영원히 있을 수 있을까요? 은결이 사람의 감정을 인식하는 기술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요?

 

로봇이 인간을 이해하는 법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 구병모의 2016년 장편소설입니다. 이 책의 제목 <한 스푼의 시간>에서 한 스푼은 세탁기에 들어가는 세제 한 스푼을 의미합니다. 매일 같이 빨래가 돌아가고, 건조되고, 다려지는 반복적인 업무의 세탁소에 가정용 로봇이 등장합니다. 그는 만들어진 대로 외부의 자극과 정보를 받아들이고, 연산작용을 통해 적절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전형적인 로봇입니다. 로봇에게 세탁은 너무나 쉽고 단순한 업무입니다. 하지만 그에게 변수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입니다. 아무리 복잡하고 정교하게 계산을 한다고 해도 답을 얻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인간의 삶입니다. 심지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간의 모습과 성격마저 변하게 되고 은결은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이 소설은 인공지능 로봇이 사람의 감정을 하나씩 배워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심지어 은결은 완전한 로봇도 아니라 샘플로 제작된 로봇으로 다른 제품보다 더욱 불완전하고, 오류도 많습니다. 로봇의 그런 서툰 모습은 오히려 더욱 인간과 닮아있어 매력이 느껴집니다. 소설은 9년이라는 시간의 흐름동안 세탁소 주인 명정이 늙어가고, 주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변화되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인간들의 각종 어려움과 삶의 무게가 담겨있습니다. 로봇 은결이 섬세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그런 인간들을 관찰하는 모습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인간다움과 로봇다움 그 경계 

세탁소와 인공지능 로봇은 어딘가 닮아있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이질적인 두 문명입니다. 각종 고급 코스로 이제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고도 건조와 살균까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고급 세탁기들이 집집마다 구비되어 있는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름한 동네 한 구석에 남아있는 세탁소는 그 어느 곳보다 더욱 사람의 냄새가 느껴집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교복 빨래를 맡기고, 취업준비생이 면접 정장의 다림질을 부탁하고, 해진 옷을 다시 고쳐갑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사연이 담긴 옷들을 소중하게 받아 각자의 삶으로 떠나갑니다. 특히나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마을 자체가 다른 곳보다 더욱 조용하고 가난한 곳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 곳에 어느 날 뚝 떨어진 인공지능 로봇은 빠르게 업무를 익혀나갑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을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사람들은 어차피 더러워질 것을 또 지우고 지우는지 그에게는 모순적이기만 합니다. 그런 로봇소년 은결에게 세탁소 주인은 말합니다. 137억 년이 넘는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사람의 인생은 고작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는 시간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인간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지를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실수를 하기도 하고, 후회를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어떤 세탁기술로도 전혀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얼룩을 갖게 됩니다. 은결은 이처럼 유한한 인간의 삶의 비밀과 섬세함을 조금씩 배워나가며, 자신의 연산체계가 하나 둘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낍니다. 이 소설은 로봇이 인간을 이해해 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고도 따스하게 담아냈습니다. 로봇의 시선으로는 도저히 합리적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는 인간들을 향한 위로와 치유의 서사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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